여러분 안녕하세요? 중국인의생활과문화 4주 3교시 수업을 시작을 합니다. 우리가 4주에서는 단위제도의 개혁에 대해서 소개를 해드린다고 그랬죠. 구체적으로 고용과 임금제도 개혁. 그리고 고용제도 개혁의 영향을 소개를 해드립니다. 제가 대도시 특히 北京이나 上海 같은 대도시의 노동자들은 단위제도가 사실은 상당히 좋은 복지정책일 수도 있었다는 말씀을 드렸죠. 왜 그랬냐면 사람들이 아주 치열하게 경쟁하지 않아도 어떤 직장에서 진급이 되고 또 기간이 지나면 임금이 올라가고 또 종신고용이 보장이 된다면 아주 출세욕이 강한 사람을 제외하고는 제가 볼 때는 아주 행복한 직장일 수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런데 이러한 직장 생활이라는 게 30년 정도 운영을 하다보면 중국정부입장에서는 효율성이 너무 떨어진다. 결국 단위를 가지고 있는 게 정부였기 때문에 정부는 이 단위가 좀 더 더 생산성을 많이 높이기를 원하는 거죠. 모든 기업주의 욕심이 그거죠. 보다 많은 이윤을 창출하려고 하는 것처럼 정부도 인제 마찬가지입니다. 그래서 정부의 입장에서는 노동자한테는 천국이지만 수익을 내지 못하는 이러한 조직들을 대대적으로 구조조정을 하자. 라는 그러한 결론에 이르게 되죠. 그런 게 인제 90년대에 단위제도 개혁으로나타나게 됩니다. 이렇게 정부의 입장이 바뀌게 되는 것은 80년대에 정책적인 변화와 밀접한 연관이 있죠. 80년대 초반에 덩샤오핑의 개혁과 개방정책을 강조를 하면서 시장경제를 도입하고 부분적으로 사유제를 혀용을 합니다. 그러니까 예를 들어서 자영업을 허용하는 게 그런 거죠. 옛날에는 개인이 길거리에서 노점상을 할 수 없게 했는데 80년대 초반부터 예를 들어 내가 닭을 길러서 달걀을 수백 개를 인제 갖고 있다 라면 그것을 길거리에 와서 팔게 해주는 거죠. 물론 그 돈을 내가 마음대로 쓸 수 있게 해주는 겁니다. 이게 인제 사유재산을 허용을 해주는 거죠. 그러면서 다양한 직업이 출현하기 시작을 해요. 이때 인제 어떤 얘기가 나왔냐면 가위를 쓰는 사람들, 가위를 쓰는 사람들 중에서 수술하는 의사보다는 길거리에서 이발해주고 돈 받는 이발사가 훨씬 낫다. 그리고 원자탄을 만드는 과학자 보다는 길거리의 茶?蛋이라고 그래서 찻잎에다가 삶은 달걀을 이렇게 삶아서 파는 게 그때 80년대는 또 짭잘한 수입이었던 거 같아요. 茶?蛋을 파는 사람이 훨씬 낫다. 뭐 이런 식의 농담이 나올 정도였어요. 그러니까 뭘 얘기를 하냐면 이렇게 새로운 직업들이 출현을 하면서 이러한 새로운 직업들이 사실은 돈 벌이가 꽤 잘 되는 시절이 있었어요. 그것이 80년대에요. 제가 92년 초만 가더라도 개인택시라는 택시 운전사들이 되게 부자였어요. 지금은 그렇지 않은데. 그때는 택시가 워낙 없고 자가용이 있는 사람이 없었기 때문에 외국인들이 오면 대부분 택시를 탔는데 외국인들이 92년, 90년대 초반부터 많이 중국에 오게 되요. 특히 학생들이 공부하러오고 어학연수오고 이러면서. 그러면 택시운전사들이 점점 일거리가 많은 거예요. 그래서 그 택시운전사들을 보면 택시운전사 옆에 이렇게 칸막이가 쳐있어요. 철망 같은 게. 난 그게 왜 그런가 그랬더니 손님을 보호하기 위한 게 아니라 택시운전사를 보호하기 위한 것이라고 그러더라고요. 그러니까 택시운전사들이 현금이 많기 때문에 가끔 강도들이 이렇게 위협하고 현금을 뺏을 수가 있다는 거예요. 그만큼 택시운전사 직업이 좋았던 시절이 90년대 초반이었었어요. 그런데 지금은 그렇지 않죠. 지금은 택시운전사 굉장히 힘든 직업이죠. 이렇게 개인의 자유로운 취업이 가능해지면서 민영기업이나 자영업. 택시운전사도 자영업 중에 하나인 거죠. 그런 자영업들이 생기고 그리고 외자기업 이런데 취업하는 사람들이 인제 늘어나기 시작을 합니다. 그러면서 이 95년이 되면 국가가 갖고 있는 직장인 단위와 민간이 갖고 있는 외국기업이나 민영기업들하고 경쟁해서 국영기업이 계속 경쟁에서 지는 거예요. 계속 적자를 내고 95년 정도가 되면 뭐 심지어는 국유기업의 반 이상이 사실은 적자다. 이런 얘기가 나올 만큼 적자가 심해지니까 정부로써는 개혁을 안 할 수가 없게 되는 거죠. 그래서 95년에 국유기업의 과잉 고용되는 사람을 구조조정을 하기위해서 만든 게 바로 새로운 노동법이라는 것을 95년에 발표를 해요. 그러니까 뭐냐 하면 제가 원래 중국의 사회주의 시절의 고용제도는 종신고용이라고 그랬죠. 그런데 그 종신고용을 깬 거예요. 그러니까 사람들을 노동계약제로 채용을 하는 거죠. 그것은 뭘 얘기를 하냐면 고용주가 내가 계약을 체결해서 채용이 된다면 계약을 파기할 수도 있는 거죠. 그렇기 때문에 인제 종신고용을 보증할 필요가 없는 거예요. 그래서 이러한 노동계약제를 통해서 많은 사람들이 해고되기 시작을 해요. 이런 노동계약제는 1986년도에 심천이나 그런데 경제특구에서 실험적으로 실시를 해요. 특히 외자기업은 사실 중국인을 종신 고용할 이유가 없죠. 기업이 여기서 2,30년 잘 되다가 장사가 안 되면 떠날 수도 있고 그리고 사실 외자기업입장에서 중국의 사회보장까지 책임질 이유는 하나도 없죠. 그렇기 때문에 심천처럼 외자기업이 많은 데는 노동계약제를 기업들도 선호를 하는 거죠. 특히 홍콩이나 타이완기업들은 노동계약제를 통해서 2,3년 고용하고 고용이 끝나면 다시 고용할지 말지를 결정을 해서 경기가 좋으면 고용을 하고 경기가 안 좋으면 해고시키고 이렇게 하는 거죠. 이렇게 함으로써 시작이 되었는데 90년대 말 특히 96년 말이 되면 중국의 도시에서 대부분 노동계약제를 실시를 해요. 정부가 인제 압력을 넣는 거죠. 국유기업들한테. 국유기업노동자들이 상당히 반발을 했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게 대세였기 때문에 결국 도시의 기업들, 특히 국유기업들의 노동자들의 90%이상이 노동계약제를 실시를 하게 됩니다. 이렇게 되면 개인의 입장에서 좋은 점은 과거에는 종신고용이기 때문에 메인 몸이죠. 어디를 떠날 수가 없어요. 다른 직장으로 이동이 불가능했는데 인제 계약이면 나도 사표를 던질 수가 있는 거죠. 그래서 사표를 내고 유능한 사람들은 더 좋은 직장으로 옮겨가죠. 이게 유능한 사람들한테는 새로운 직장을 찾는 기회이지만 무능한 사람들한테는 결국 실업자로 전락하는 위험에 노출되는 불행한 생활의 시작입니다. 기업의 입장에서는 좋죠. 불필요한 그런 사람들을 해고를 함으로써 구조조정을 하고 그래서 인건비를 줄이고 또 직원을 채용할 때도 인제는 더 이상 노동국에 직원채용을 의뢰할 필요가 없어요. 자기가 직접 채용을 할 수가 있는 거죠. 그러면 회사가 원하는 사람을 채용을 하는 거죠. 만약에 내가 IT산업인데 굉장히 유능한 개발자를 필요로 하면 자기네가 인터뷰를 하고 면접을 봐서 채용을 하게 되는 거죠. 그래서 도시 노동자들이 그 동안 누려왔던 그 ??碗이라고 하는 종신고용은 인제 깨져버리죠. 그리고 도시 노동자들이 완전 고용되거나 기본생활을 보장된 이런 것도 해체되기 시작을 해요. 이러면서 95년, 96년 그러니까 95년에 시작이 돼서 96년에 90%이상이 노동계약제를 실시하니까 98년 정도 되면 도시가 술렁술렁해요. 제가 98년에 가서 해고된 사람들을 한 2주정도 인터뷰한 적이 있었는데 그때 가서 사람들을 만나보니까 불만이 대단하더라고요. 아, 진짜 국가를 믿고 나는 평생을 국가에 바쳤는데 나이 45에 해고가 되었다. 난 누구를 믿어야 되느냐? 뭐, 불만이 대단했었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부는 과감하게 구조조정에 성공을 했죠. 지금은 사실은 구조조정이 다 끝난 상태에요. 그리고 한편의 유능한 사람들은 下海하기 시작해요. 下海라는 게 뭐에요? 물 밑으로 이렇게 내려가는 거죠. 그게 뭐냐 하면 인제 단위에서 얻을 건 다 얻고 임금이 높은 직장으로 옮겨가는 거예요. 단위에서 이미 집도 하나 배정을 받았고 그리고 또 뭐 복지혜택도 어느 정도 부인을 통해서 받게 되면 부부 중에 남편이나 부인 둘 중에 한 사람은 외자기업으로 이전을 직업이동을 하는 거죠. 그럼 외자기업들은 대부분 사무직인 경우에 월급이 많으니까 캐쉬 소득이 많은 데로 이직을 하는 아주 영리한 사람들은 시장경제에 빨리 적응하는 것들을 볼 수가 있었죠. 그리고 노동계약제라는 게 사실 90년대 후반에 중국의 많은 사회문제를 가져온 게 바로 이 노동제 계약제가 시발점인데 下?이라고 하는 게 새로운 단어로써 중국에 나타나게 되는 게 90년대 후반이에요. 원래 下?이라는 것은 뭐냐면 在?이라는 건 ?이라는 게 ?位라고 해서 중국말에는 일자리에요. 내가 어떤 일자리에 있다는 거죠. 그 일자리를 내려온다는 건 취업을 못하게 되는 걸 의미를 해요. 그러니까 下?이라는 건 사실 실업이나 똑같은 말인데 이 사회주의 정부에서 실업률이 증가하는 거는 또 막아야 되죠. 그렇기 때문에 공식 실업률을 통계에 넣지 않기 위해서 실업자라는 이름대신 下?을 쓰게 되죠. 그래서 下?은 실업통계에 반영이 안 돼요. 사실상은 실업이나 마찬가지에요. 그런데 왜 실업통계에는 반영이 안 되냐면 下?한 사람들은 한 1~2년은 대부분 원래 직장의 서류상으로는 등록이 되어 있어요. 그런데 실제로는 출근할 필요도 없고 일할 일이 없으니까 월급도 반밖에 안 나오거나 아주 재정이 안 좋은 직장은 아예 안 나오는 거죠. 그런 것을 下?이라고 얘기를 하죠. 그러니까 노동계약제가 실시가 되면서 단위는 불필요한 인원을 下?이라는 방식으로 해고를 하는 거예요. 서류상으로는 해고를 안 했지만 실질적으로는 일을 주지 않음으로써 않고 너 나올 필요 없다. 네가 알아서 직접 알아봐. 이렇게 얘기를 함으로써 자기네들 부담을 덜어보는 거죠. 그런데 下?과 실업의 차이라는 건 뭐냐면 서류상의 등록되어 있다는 게 차이죠. 일하는 사람으로. 그런데 실질적으로 실업자가 된 것이기 때문에 대부분 재취업을 알아봐야 되는데 어떤 사람이 이렇게 下?이 되겠어요? 결국 국유기업에서 쓸모없는 사람들이 下?이 되죠. 주로 얘기를 해서 무능한 사람들인 거죠. 40대이고 여성이고 학력이 없고 기술이 없는 사람들. 그러니까 국유기업에서 해고된 사람이 재취업하기는 훨씬 더 어려워지는 거죠. 왜냐하면 국유기업이라는 데가 아무래도 효율성을 민영기업보다 더 추구하지는 않는 데 인데 그런데서 마저 해고를 시켰더라면 효율성을 추구하는 민영기업, 외자기업에서는 이런 사람을 고용할 이유가 없는 거죠. 그러니까 결국 도시에서는 실업률이 증가할 수밖에는 없는 거죠. 실질적으로는. 그래서 조사에 의하면 90년대 말이 되면 도시의 실업률은 10%까지 육박해요. 공식적인 통계는 4%정도로 나와요. 그러니까 정부의 통계는 4%인데 실제 조사기관들이 조사를 해보면 그 정도보다 배 정도인 5% 아니, 8%에서 10% 정도 나오죠. 그러면서 90년대 말에 노동자들의 시위가 급증을 해요. 시위이유는 임금이 체불 된데요. 왜냐하면 국유기업들이 적자를 많이 내면서 임금을 제대로 못주는 국유기업들이 많아져요. 특히 대형 국유기업들은 고용하고 있는 인원이 엄청나게 많기 때문에 그 사람들의 임금이 이 전체의 이익에서 상당부분을 차지하는 거죠. 그러니까 이런 국유기업들이 할 수 없이 임금이 체불되니까 무단해고를 하게 되죠. 그래서 임금도 체불된 사람들이 갑자기 무단해고까지 당하면 공동으로 인제 들고 있어나는 거죠. 그래서 집단적인 시위가 굉장히 많이 발생하는데 대표적인 게 2002년도에 흑룡강 성에서 大?이라고 하는 유전이 있어요. 그러니까 동북지역의 유전들이 많은데 특히 흑룡강 성이 그렇데요. 여기의 시위가 굉장히 유명했어요. 大?에서 유전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인제 굉장히 심각한 시위를 했었죠. 그리고 동북지역은 중공업이 발전이 되어 있는 게 50년대 까지만 해도 중국이 기술을 주로 소련에서 가지고 왔죠. 그래서 소련하고 가까운 동북지역에 중화학공업들을 많이 만들었어요. 그런데 이게 다 중공업들이 대형이기 때문에 90년대 후반에 구조조성을 하게 되니까 해고자들도 그만큼 숫자가 늘어나는 거죠. 그래서 흑룡강 성이나 길림성 이런 데서 인제 90년대 말 2000년대 초반에 대규모 시위가 많이 발생을 하는 거죠. 그리고 인제 또 하나는 체제 내에서 체제 외로 직업이 이동을 하게 되요. 그러니까 사람들이 취업을 할 때 더 이상 체제 내라고 하면은 옛날의 사회주의 시절의 직업들이죠. 그러니까 단위에 속하는 국가가 가진 공무원이 되는 것을 사람들이 선호하지 않아요. 과거에는 선호했는데 그러면서 점점 민영기업이나 외자기업을 선호를 하게 되요. 왜냐하면 월급을 많이 주고 여러 가지 좀 자유롭고 그러니까 그래서 국가기관에서 외자기업이나 민영기업 쪽으로 젊은 사람들은 계속 이직을 하고 직장을 선택도 유능한 사람은 외자기업이나 민영기업에 가게 되죠. 그래서 대졸자의 직장 선택 그것을 조사를 해 보면 90년대 후반 2000년대의 1위가 연해개방도시에 가는 거예요. 深?이나 上海나 이런 도시에 가서 취업을 하는 거죠. 2위는 외자기업에 취직을 하는 거고 3위는 인제 다른 나라로 가서 취업을 하는 거죠. 이렇게 직장에 대한 선호가 바뀌는 것을 볼 수가 있습니다. 그리고 2000천 년대가 되면 도시에서 빈민층이 형성이 되기 시작을 해요. 그러니까 72년에 마오쩌둥이 닉슨을 만나서 호언장담하면서 우리는 빈민층이 없다. 우리는 모든 사람이 평등하고 아주 부자도 없지만 아주 가난한 사람이 없다. 이게 사회주의라고 자랑을 했는데 불과 몇 십 년 지나지 않아서 2000천 년대 초반이 되면 도시에 빈민층들이 형성이 되기 시작을 해요. 어떤 사람들이 빈민층이 되느냐? 90년대 말 2000천 년대 초반에 이렇게 국유기업에서 해고 된 사람들 재취업도 안 되고 그동안 모아놓은 재산도 없어요. 왜냐하면 임금도 적게 받았고 그냥 그날그날 생활만 하면 된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별로 저축한 것도 없죠. 왜냐하면 정부가 갑자기 이렇게 자기를 해고시킬 것이라는 건 꿈에도 상상을 해보지 않은 세대죠. 이 세대는 그냥 정부가 이렇게 해서 나 죽으면 무덤까지 정부가 다 알아서 해줄 거라고 생각을 했던 사람들이죠. 그런데 갑자기 어느 날 40대 중반에 해고가 되었어요. 이 사람들이 인제 빈민층으로 전락을 하는 거고 또 하나는 90년대 말에 北京이나 上海 같은 대도시에 농촌에서 올라오는 이농민들이 급격하게 증가를 해요. 이 사람들이 물론 일자리가 많아지면서 올라오긴 했지만 대부분 임시직이었기 때문에 일 년이면 예를 들어서 몇 달은 일하지만 몇 달은 또 노는 그런 계절이 있는 거죠. 건축노동자는 겨울에는 사실 일이 없어서 대부분 놀아야 되는 거죠. 그런 식의 인제 비정규직, 임시직 이런 사람들이 수입이 일정하지 않으니까 사실 또 빈민층이 형성이 되죠. 그래서 北京 외과에 가면 허름한 판자촌 같은 것이 생기는 거죠. 그래서 이 사람들이 그냥 저렴한 임대료를 내고 와서 살고 그러는 빈민촌이 형성이 되기 시작을 합니다. 그래서 사실 北京도 자본주의 국가의 도시와 같은 똑같은 빈민층의 문제를 겪게 되는 게 바로 2000천 년대 초반이죠. 그리고 임금제도도 개혁이 되는데 제가 그런 얘기를 했죠. 중국의 노동자들은 사실은 대도시에 있다하면 좋은 조건이었다. 뭐 열심히 일하지 않아도 세월이 지나면 임금이 올라갔다고 그랬죠. 그런데 인제 점점 그런 혜택이 없어지는 거죠. 그래서 임금제도 자체가 중앙정부가 정한 임금 표에 의해서 주는 것이 아니라 점차적으로 본봉은 줄이고 보너스 부분을 늘려요. 사실 보너스부분을 늘리면 능력을 인정받는 사람은 보너스가 많이 늘어나기 때문에 좋겠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보너스를 많이 받지 못하죠. 그래서 임금을 차등 지급하면서 혜택을 보는 사람은 유능한 소수이고 다수는 사실 불이익을 보게 되죠. 그렇기 때문에 임금을 이렇게 차등임금제를 실시하게 되고 이런 차등임금제가 노동자들한테 인센티브를 부여하는 기능이죠. 많은 노동자들이 보다 많은 임금을 얻기 위해서 옛날보다 더 열심히 일을 하는 거죠. 그리고 불량품도 덜 만들고 만약에 불량품이 일하는 데서 많이 나오면 임금을 삭감한다.그러면 사람들이 당연히 일을 하면서 조심을 하죠. 그러면서 생산성도 인제 강화되는 그런 긍정적인 효과가 나타납니다. 그러니까 이게 경쟁이 사실은 반드시 나쁜 것만은 아니죠. 경쟁의 동전의 양면 같은 게 있죠. 생산성을 강화하고 효율을 증가시키면 따른 한 면의 또 비인간적인 측면이 있는 거죠. 불평등을 강화시키는 측면이 있고 그런데 인제 사회주의 국가에서 이런 경쟁의 논리를 도입하기 시작을 합니다. 뭐를 위해서? 경제발전을 위해서. 이익을 추구하기 위해서 그렇게 하는 거죠. 그래서 컴퓨터 회사 중에 리엔상이라는 회사가 있죠. 이 리엔상이라고 하는 회사는 北京에 굉장히 유명한 그런 IT계통의 회사인데 이 회사 같은 경우는 인사제도를 아주 파격적으로 인사제도를 도입을 하는데 신입사원도 1~2년 동안 인정을 받으면 관리직으로 승진을 시켜줘요. 옛날에는 예를 들어서 스텝 바이 스텝으로 올렸죠. 뭐 3년, 5년, 7년 이런 식으로 근무한 햇수를 가지고 진급을 시켜줬는데 그렇지 않은 거죠. 내가 한 2년만 일해도 능력을 인정을 받으면 갑자기 10년 일한 사람하고 똑같은 직급으로 승진이 파격적인 승진이 가능한 거죠. 그리고 스톡옵션 제도를 도입을 해서 주식을 줘요. 이게 일종의 보상체제인데 그래서 주식을 상장을 했을 경우에 또 주식 때문에 돈을 버는 경우도 생기죠. 이러한 리엔상말고도 하이얼이라고 해서 가전, 백색가전 만드는 회사가 있어요. 우리나라에도 냉장고나 세탁기 같은 게 좀 들어와 있을 텐데 이러한 하이얼 그룹에서는 어떤 사원이 아주 좋은 아이디어를 제안을 했다. 그런데 그것이 히트를 쳤다. 그러면 그 아이디어의 보상을 해주는 거 얼마를 지급을 해주는 거예요. 뭐 예를 들어서 새로운 아이디어가 회사의 10억을 벌게 해줬다. 그러면 뭐 5백만 원 이렇게 보너스를 주는 거죠. 그러면서 임금의 격차가 최대 열배까지로 증가를 하게 되요. 같은 직급이라 할지라도 그러니까 동일 직급, 동일 노동에는 동일 임금을 줬던 과거하고는 비교가 안 되는 거죠. 그래서 직원간의 임금이 엄청나게 많이 차이가 나고 누가 얼마를 받는지 아무도 모르는 거죠. 서로 다 쉬쉬하니까 그래서 국유기업 같은 경우에도 노동자들의 관리방식이 결국 바뀌게 되는 거죠. 민영기업이나 외자기업 못지않게 바뀌어서 능력에 따라 보상하고 승진하고 고용도 능력에 따라 하는 거죠. 무능한 사람 구조조정 시키고 유능한 사람은 보다 많은 보수를 줌으로써 국유기업 자체가 완전히 새로운 구조조정을 하는 게 98년부터 2002년까지 약 4년 동안이라고 볼 수가 있어요. 이 작업을 당시의 총리였던 주룽지 총리가 했고 엄청나게 많은 원성을 듣게 되죠. 노동자들한테. 그래서 심지어는 90년대 말에 주룽지가 중간에 쫓겨날지도 모른다는 얘기를 들을 정도로 그랬지만 사실 주룽지라는 사람이 청렴하고 개인적으로는 굉장히 유능한 사람이었기 때문에 무사히 본인의 임기를 마쳤죠. 그리고 중국인들이 봤을 때 존경받는 지도자로 남게 됐죠. 그리고 단위 밖의 직장들을 보면 단위라는 것은 국가가 소유하고 있는 국유제 직장이라고 그랬죠. 그런데 그 외의 민간경제 영역에는 자영업자들이 있고 민영기업이 있고 외자기업이 있고 가장 큰 범위로 나뉘면 이런 게 있겠죠. 그러니까 자영업자들은 1980년대 초부터 실업이 심각해지니까 실업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자영업을 혀용을 해요. 그러니까 자영업이란 것은 뭐냐면 고용하는 노동자가 8명이상인 경우가 자영업이에요. 아, 8명 이하인 경우가. 아, 미만인 경우가. 그러니까 8명부터는 사영기업이라고 부르는 거죠. 그러니까 예를 들어 내가 중국집을 하는데 우리 집에 고용된 직원이 7명이다. 그러면 나는 자영업자에요. 그런데 갑자기 장사가 잘 돼서 10명으로 늘어나면 나는 일종의 사영기업자가 되는 거죠. 그렇죠, 민영기업자가 되는 거예요. 그렇게 해서 처음에 자영업으로 시작한 식당들도 나중에는 민간기업, 민영기업으로 발전하는 데가 많죠. 지금은 뭐 北京에 가면 수백 명 고용한 음식점들도 많죠. 워낙에 규모가 크니까. 그래서 민영기업, 사영기업이라고 하는 것은 1987년도에 13차 당대회의에서 민영기업의 발전을 법적으로 인정하고 급속히 발전, 인정했죠. 그러면서 급속히 발전을 하기 시작을 합니다. 92년도에 14차 당대회의에서는 규모가 더 확대가 되었고 그리고 87년까지만 해도 사영기업의 80%가 농촌에 있는 향진기업 형태로 발전을 했는데 그 후에는 주로 도시에서 발전을 합니다. 이 내용은 나중에 우리가 다른 것을 배우면서 좀 더 자세히 설명을 해드리죠. 어쨌든 외자기업 같은 경우는 외국인들이 투자한 기업들이죠. 1980년대에 연해지역 특히 광동성, 복건성 지역에 많았죠. 광동성은 홍콩이나 동남아 자본들이 많이 들어왔고 동남아 화교 자본이 많이 들어왔고 복건성은 타이완하고 이렇게 마주보고 있는 성이죠. 타이완 사람들이 대부분이 복건성 출신이에요. 타이완 자본이 많이 들어온 게 복건성입니다. 이게 92년 이후에 전국적으로 외자기업이 확산이 되면서 많은 사람을 고용하게 되죠. 그래서 90년대에 국유기업이나 단위에서 단위 밖으로 직장을 이동할 때 이것을 下海라고 불렀는데 이런 현상을 발생시켜서 사람들을 인제 고용한 게 바로 이 외자기업이죠. 그러니까 사무직 같은 경우는 임금 수준이 높은 외자기업이나 민영기업으로 많은 시민들이 직업 이동을 하게 되죠. 그리고 저임금 수준의 생산직에 취직을 하는 사람들은 시민이 아니라 외지에서 온 농촌에서 온 농민공들이 주로 취업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90년대에 10년 동안에 외자기업에서 사무직이나 생산직 다 엄청난 인원을 고용을 하게 되요. 왜냐하면 중국이 발전을 하면서 외국인의 직접투자를 허용을 해서 중국이 발전하는 방식을 선택했기 때문에 90년대에 80년대 20년 동안에 외자기업이 중국에 엄청 많이 들어오죠. 우리도 사실 한국기업들이 많이 나가 있죠. 인건비가 싸니까 그래서 사무직 같은 경우는 국유기업보다 임금이 높으니까 대졸자들이 많이 외자기업에 취직을 하고 생산직은 임금이 낮으니까 시민들은 취직을 안 하고 농촌에서 올라 온 이농민들이 주로 취직을 하게 됩니다. 이러한 외자기업들 민영기업, 자영업 이런 단위 밖에 있는 직장들은 복지혜택은 없어요. 임금만 주는 거죠. 그런데 그 대신 임금이 조금 높은 거죠. 그리고 다 노동계약제로 고용을 해요. 몇 년씩 계약해서 고용하기 때문에 해고도 가능한 노동이 굉장히 노동의 유연성을 강조를 하는 겁니다. 이렇게 해서 우리가 80년대 까지 유지 되었던 60년대, 70년대, 80년대 30년 동안 유지되었던 단위제도의 고용과 임금제도가 1995년부터 어떻게 개혁이 되는가? 그리고 개혁하는 이유는 뭐라고 그랬죠? 어, 기억안나세요? 뭐라고 그랬죠? 그렇죠, 효율성을 높이기 위해서 이렇게 임금제도는 차등임금제로 바뀌고 고용제도는 종신고용제에서 노동계약제로 바뀐다고 그랬죠. 그러니까 국가 입장에서는 기업의 효율성을 높이기 위해서 사실은 과잉 고용된 사람들을 완전히 구조조정을 하는 게 바로 단위제도의 개혁입니다. 그리고 이렇게 단위제도에 그 개혁을 하기 위해서 노동계약제를 95년부터 실시를 하게 되니까 90년대 말에 실업자가 굉장히 증가를 하죠. 그러니까 중국이 사회적으로 굉장히 불안정한 그런 시기가 90년대 말부터 2000년대 초반까지 많은 집단적인 시위가 있었는데 그게 인제 국유기업에서 해고 된 사람들이 수만 명씩 모여서 시위하는 그런 일들이 많았습니다. 중국은 이렇게 급속한 고도성장을 위해서 과거의 제도들을 과감하게 개혁을 하고 있죠. 이런 개혁이 도시에 사는 시민들의 개인의 생활에도 엄청난 영향을 미치게 됩니다. 그래서 일부는 이런 개혁의 과정에서 떼돈을 버는 그런 부자들이 생기는 반면에 또 일부는 도시의 빈민층으로 전락하는 그런 사람들도 생기죠. 어떤 게 좋은 사회인지는 사실은 판단하기 어려운 그러한 측면들이 있는 거 같습니다. 우리가 이렇게 해서 4주에서는 도시의 시민들의 직장, 생활에서 사회주의 시절 30년 그리고 개혁개방 이후 30년 이렇게 나누어서 소개를 해 드렸습니다. 5주는 맛있는 얘기 좀 하죠. 4주가 조금 어려웠죠. 5주에는 쉬운 얘기 합니다. 중화요리, 역사 맛있는 얘기를 하면서 즐겁게 수업을 해보도록 하겠습니다.예, 여러분 어떻게 괜찮죠? 너무 어렵진 않죠? 예, 고생하셨습니다.